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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죽어야 사는 여자'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결은?

슬기로운 '집콕' 영화 한 편 보며 연휴 즐기기

 

 

 

[경기탑뉴스=성은숙 기자]         "취미가 뭐예요"? 저는.."영화 감상과 독서요"

80~90년대 미팅이나 맞선 자리에서 어색함을 깨기 위한 문답이다.

 

요즘 같으면 별의별 대답을 내놓지만 90년대 초까지도 특별한 취미가 없을 때 만만한 게 영화 감상이었다.

 

영화라고는 고등학교 시절 단체 관람으로 본 킬링필드가 전부였고 지금은 혼밥. 혼술. 혼영까지 가능하지만 과거에는 딱히 남자친구가 없으면 극장 가기가 애매했다.

 

88 올림픽이 끝나고 우후죽순 비디오 대여점이 생기면서 영화를 접하기 수월해졌다.

 

`죽어야 사는 여자`는 92년 개봉한 영화다.

 

보통 극장 개봉을 마치고 비디오 대여점에 뿌려지니 최소 90년대 중반쯤 본 것 같다.

 

지금은 주인공 이름도 까맣게 잊은지 오래된 영화를 떠올린 건 쇼윈도에 비친 모습이 둥글 납작하다 느껴진 날이었다.

갑자기 열이 훅 올라 창문을 열었다 닫았다 도통 잠을 못 잔다며 갱년기 증상을 늘어놓는 동년배의 얘기를 들으며 아직 짱짱함에 안도했지만 쇼윈도에 비친 모습은 더 이상 산뜻하지 않다.

뭔가 아래로 아래로 흐르는 느낌이랄까.

 

가르마라도 잘못 타는 날에는 여지없이 흰머리가 솟아오르고 변장만 잘 하면 봐줄 법한 얼굴에 비해 세로 목주름은 감추기 어렵다.

영화는 액션 히어로 부르스윌리스(성형외과 의사 멜빈 역) 골디 혼(늘 매들린에게 남자를 빼앗기는 헬렌 역) 과 메릴 스트립(왕년에 잘나가던 배우 매들린)이 주연을 맡았다.

어려서부터 매들린에게 남자친구를 뺏긴 헬렌은 이번에도 시험 삼아 보여준 약혼자까지 뺏기고 매들린이 죽는 영화 속 영상만 돌려보며 먹방에 빠지고 급기야 정신병원에 갇히고 만다.

그로부터 7년 후 헬렌의 출판기념회에 초대된 두 사람은 더 이상 뚱보가 아닌 새파랗게 젊고 아름다워진 헬렌의 모습에 놀란다.

 

복수심에 전 약혼자이자 친구의 남편인 멜빈 꼬시기에 들어가는 헬렌. 역시 줏대 없이 넘어가는 멜빈 박사다.

미모와 젊음으로 무장한 헬렌에게 자극을 받은 메들린 은 수소문 끝에 큰돈을 주고 신비의 물약을 사서 마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변한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거울을 보던 매들린의 손이 아기처럼 고와지더니 벌어진 가슴에 골이 생기고 두툼했던 배가 쏙 들어가고 쳐진 엉덩이가 올라붙어 탱탱해진다.

 

컴퓨터 그래픽이지만 보기만 해도 흐뭇한 장면이다.

 

결국 두 여자가 다 신비의 물약으로 젊음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헬렌의 유혹에 넘어간 남편과 싸우던 중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메들린.

 

맥박과 심장이 뛰지 않는 메들린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목이 완전히 돌아간 모습으로 살아 일어서고 남편을 유혹한 친구 헬렌을 찾아가 홧김에 총을 쏜다.

 

 

 

 그러나 헬렌도 죽지 않고 배에 구멍이 나버린 채 일어선다. (그 시절에는 이정도의 효과로 에일리언 3와 배트맨 2를 제치고 이듬해 아카데미 시각 효과상을 받았다)

 

목이 돌아가고 배에 구멍이 난 두 여자는 서로 같은 약을 먹은 걸 알게 되고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화해를 한다.

 

심장은 뛰지 않고 체온은 송장과 같이 낮은 고장 난 두 여자는 병원에 갈 수도, 고쳐줄 사람도 없다.

 

이사실을 아는 사람은 멜빈밖에 없으니 그에게도 약을 권유하지만 박사는 적절한 수리를 해주고 끔찍한 두 여자에게서 도망을 간다.

 

시간이 흘러 37년 후

 

전 남편인 멜빈의 장례식에 모든 관절은 뻣뻣해져 구부리기도 어렵고 촛농처럼 흘러내린 얼굴은 검은 베일과 모자로 가린 두 여자가 참석한다.

 

이어지는 신부님의 추모사 "영원히 사는 삶의 비결은 남은 자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현실 속에 영원히 살기를 원했던 그녀들은 추모사를 비웃으며 장례식장을 나온다.

 

구부러지지 않는 몸으로 계단을 내려오다 두 여자는 깡통을 밟고 계단 밑으로 굴러떨어져 마네킹처럼 산산 조각이 난다.

 

 

 

젊음과 아름다움을 쫓았던 두 여자의 해프닝을 가볍게 다룬 코미디 영화이다.

 

젊음이 좋은 줄 모르는 시절을 보내고 어느덧 30년이 흘렀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외모에 있지 않고 마음에 있다는 진리조차 공염불처럼 느껴지는 중년이 되고 보니 신비의 물약을 원샷 드링킹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지며 젊음과 아름다움을 쫓았던 두 여자의 이야기가 더 이상 코미디가 아니게 느껴진다.

 

다행히 예전과 달리 눈만 돌리면 신비의 물약은 도처에 있다.

 

필러, 보톡스, 나이를 절대 속일 수 없는 목주름에도 효과가 있다는 레이저, 얼굴을 당기는 금실까지.. 돈만 있으면 늙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100세 시대를 살게 된 우리는 이제 자연의 순리대로라면 노화가 시작되는 40대부터 헤아려도 늙은 모습으로 더 오랜 시간을 살아야 한다.

순리를 거스르면 조금은 젊은 모습으로 지내다 가겠지만 페인트로 가득 덧칠한 그녀들의 얼굴처럼 부자연스러움이 남게 되기도 한다.

 

 

 

 

70을 넘겨도 노인정에서 막내인 시대, 70 을 넘긴 할머니를 그 나이면 새댁이라 하는 시대를 살면서

 

사람은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말에 이왕이면 플러스 젊음이면 더 좋겠다는 미련한 싸움을 계속할 생각이다.

 

풀은 마르고 잎은 시들어 외형은 변화하겠지만 유지하겠다는 생각만으로도 시듦을 어느 정도 지연시키리라 믿는다.

 

정신은 몸을 지배한다.

 

좋은 것을 먹으란 말이 아니다 조금은 클린 한 식단, 적당한 운동과 산책,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얼굴은 평균 동년배의 얼굴보다 젊어 보인다.

 

거기에 남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려본 사람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난다.

 

노화를 감추려 애쓴 여배우들보다 은퇴 후 난민 구호를 위해 아프리카의 햇볕에 그을린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더 아름답다.

 

심지어 암 투병 중에도 소말리아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는 그녀의 눈빛은 어떤 보석보다 빛이 났다.

헵번의 말이라고 잘못 알려진 샘 레벤슨의 시 '아름다움의 비결'에는 매혹적인 입술을 가지고 싶다면 친절한 말을 하라로 시작해 배고픈 자와 음식을 나눠라,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뿌리치지 말 것과 우리의 손이 두 개인 것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고 끝을 맺는다.

영화 속 멜빈 박사의 장례식에 신부님은 이렇게 추모했다.

 

"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여기. 우리들 마음속에 살아있습니다."

"영원한 젊음의 비결은 그의 자녀들과 증손들의 삶 속에 남아 있습니다."

순리를 거스르지 않으며 나누고 도우며 기뻐하고 활기차게 살자.

이것이 영원한 아름다움의 비결이다.

우리가 아름답게 남기고 간 흔적을 추모하며 후세들이 '엄지 척'을 해준다면 괜찮은 성적표를 들고 기쁘게 떠날 수 있을 것이다.